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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_ 무엇이 인간사회를 바꾼것인가?

ryumosa 2016. 4. 28. 12:41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나가던 수모를 겪었던 것은 왜일까?  

유럽인들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해온 이유는 인종적인 측면해서 우월하기 때문일까?

 

13000년전의 인류는 수렵채집생활을 하며 문명화의 정도가 거의 같은 출발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30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륙간에 문명의 발달이 불평등하게 이루어진 원인은 무엇인가?

각 문명의 발달 속도의 차이를 일으킨 요인은 무엇인가?

 

먼저 식용작물 및 가축의 분포적 차이가 이러한 격차를 일으켰다고 말한다.

 

주요 농작물과 가축은 거의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래되었으며, 그것들 중 대부분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일컬어지는 시리아, 팔레스티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지역에서 유래되었다.

 

농작물 개발로 인한 농업의 발달은 식량 생산의 증가를 가져와 인구를 증가시키고, 도시와 국가를 발전시키게 되었다.

또한 잉여 농작물이 발생하게 되어 농업 이외의 전문직[정치가, 종교지도자, 기술자]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정치조직의 발달시키고 기술을 발전시켜서, 그 문명의 발전 속도를 가속화 시키게 된다.

 

결국 식용작물의 개발이라는 조그만 차이가 훗날 문명 발달의 격차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또한 가축은 농업 생산력의 증가에도 도움이 되었고, 가축 자체가 단백질 공급원이 되기도 했지만, 전염병 전파라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가축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서 유라시아인들은 소에게서 홍역, 천연두, 결핵, 돼지에게서 인플루엔자라는 반갑지 않은 전염병을 받아들이게 된다.

 

전염병으로 대량 인구 감소라는 시련을 주기도 했지만, 살아 남은자는 면역의 획득이라는 축복을 받게 된다.

 

유럽인들은 전염병이라는 무기와 면역력으로 한 때 5000만명 이상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쉽게 멸망시키고 자신들이 그대륙을 차지 할 수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지리적 요건 또한 농업의 발달 못지 않게 중요한 요인이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일 위도상에 가로로 길게 연결되어 있어 기후적 요건이 비슷하였으므로 농작물과 가축의 전파가 쉬웠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에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 기후가 다양했으므로 동일한 농작물과 가축의 전파가 어려웠다. 그것은 대부분 사막과 열대우림지역으로 구성된 아프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한 폴리네시아는 바다라는 장벽으로 인해 섬에 고립되었던 문명이 많아 다른 문명과의 교류가 어려웠고,

아프리카는 사하라 사막이라는 거대한 장벽으로 인해 유라시아 문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유라시아 대륙은 큰 바다와 거대한 산맥이라는 장애물이 거의 없이 일렬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인 개방성으로 인해 유라시아의 각국은 서로 교류하며 때로는 경쟁하며, 문명의 발달을 촉진해 왔다.

 

결국 유라시아인이 타 대륙의 사람들에 비해 문명의 발달이 빨랐던 것은, 그들이 환경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정착하였고,

그 지리적 이점이 요구하는 끊임없는 경쟁으로 인해 더 큰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은 유라시아의 그 넓은 지역중에서 근대 사회의 패권이 중동이나 인도, 중국과 같은 나라가 아닌, 하필 유럽에게 넘어갔느냐 하는 것이다.

 

한때는 전세계의 경제생산의 50%이상을 차지했던 중국과 같은 나라가, 뛰어난 문명을 이루고 엄청난 인구자원과 비옥한 평야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 세계적인 주도권을 잡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유럽은 복잡한 해안선과 산맥들로 지형적 다양성으로 인해 자연스레 다양한 국가로 나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다양성은 서로간의 생존 경쟁을 유발하여 문명의 발달을 가속화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중국의 경우는 그 반대로 중국대륙을 복잡하게 구분짓는 지형적인 장애물이 없었으며 이로인해 진시황에 의해 비교적 빨리 통일 국가를 이루었고, 긴 세월동안 동아시아의 패권을 누려오면서 경쟁할 상대를 찾을 수 없었고 지나친 안정속에서 발전이 더딜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론은 저자가 말한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라는 문장에 요약되어 있다.

 

#. 인류사적으로 가축화와 작물화가 가능한 동식물의 부존이 대륙간에 차이가 있었던 이면에는 가축화 혹은 작물화를 시도하기 이전에 해당 대륙에 거주하는 집단이 포획대상의 멸종을 고려하지 않고 남획한 것도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유라시아대륙은 동서축을 중심으로 이동이 쉬운 구조인 반면,

아프리카나 남북 아메리카의 경우는 남북축을 중심으로 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문명의 확산속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물의 경우 같은 위도 상에서는 물의 공급 이외의 일조량이나 기온 등의 요소들이 유사하기 때문에 큰 노력없이 농사법이 확산될 수 있겠으나,

 

남북축으로는 일조량을 비롯한 기후요인으로 작물자체의 적응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한계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에 각 대륙 사이에 존재하는 바다라는 제한요소가 작물이나 가축의 확산을 저지하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는 기술을 확보한 집단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 사람이 만든 야생동물, 가축

 

왜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만들기 시작한걸까.

-. “식량이 부족해졌기 때문”

야생동물을 잡아다 길러 먹기로 했다. 고기는 잘 썩기 때문에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없지만 가축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게다가 영양이 풍부한 젖도 이용할 수 있었다.

-. 가축을 기르며 고기 외에도 털과 가죽으로 옷을 지었는데 주로 양이 이용됐다. 동물의 뿔이나 뼈도 이용했다. 뿔과 뼈를 뾰족하게 갈아 화살촉과 창 같은 사냥 도구를 만들었다. 또 낚시 바늘과 작살 같은 어획도구와 괭이, 낫 등 농기구도 만들어 냈다.

 

-. 집으로 온 대표적인 동물들 개가 가장 먼저 사람과 같이 살게 됐고 이어 염소, 양, 돼지가 집으로 왔다. 소, 말, 라마, 낙타가 그 뒤를 이었다. 사람은 가축을 키워 음식과 가죽을 얻었다. 또 이들로 농사를 짓거나 타고 다니기도 했다.

 

-. 곡식으로 열량을 잘 섭취한 것도 중요하지만 임신을 도운 것은 가축이 주는 고기와 젖이다. 여성의 출산 능력은 단백질과 관련이 깊다. 몸에서 단백질이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되어야 임신을 할 수 있다.

 


 

-. 사람이 늘어나자 이를 관리하고 통제할 지도자가 등장했다. 도시 국가가 탄생했다. 도시 국가는 기원전 3200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고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중국 등 가축이 많은 곳에서 탄생했다. 결국 가축이 국가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큰 도시국가는 이웃 도시를 지배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이용된 가축이 말이었다. 사람들은 말을 이용해 빨리 이동했고 많은 군수품을 수송할 수 있었다.

 

중동지역에서는 주로 소, 양, 염소, 낙타를 기른다. 이들은 물 없이도 꽤 오랫동안 살 수 있다. 반면 돼지는 땀샘이 없어 중동의 더운 날씨를 이겨내려면 쉼 없이 시원한 물에 몸을 적시고 그늘에서 몸을 식혀야 한다. 고기를 공급하는 데 돼지만한 동물은 없다. 하지만 물이 부족한 중동지역에서는 돼지를 기를 수 없어 아예 더럽게 여기기로 했다

 

인도에서 소를 숭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도에서는 소를 먹는 것보다 기르며 밭을 갈고 우유를 얻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먹는 것을 금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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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1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현대의 불평등 원인에 대한 관점은 생물학적(인종차별적, 지능적) 차이거나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류 관점인 인종차별적 이론에 반해 과학적인 분석으로(생태지리학, 생태학, 유전학, 병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등) 환경적 차이 때문임을 주장한다.

 

선사시대부터 환경적으로 유리한 지역에 살게 된‘우연’이 오늘날 문명의 우열을 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의 발전현상과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사건을 사례로 들고 있다.

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의 조상들이 다른 대륙으로 퍼져가면서 어떤 대륙이 앞선 발전을 보이기 시작했는지 이유를 찾고,

처음에는 단 하나의 사회에서 출발했던 폴리네시아인들이 태평양 일대로 진출해 각양각색의 여러 섬에 정착한 후 각각 수렵 채집민 부족이나 제국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했던 현상을 분석하고,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의 병원균, 말, 문자, 정치조직, 기술(선박, 무기제조술) 등 직접적 원인과 그 원인을 초래한 궁극적 원인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다.

 

2부. 식량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식량 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

 

6장. 식량 생산민과 수렵 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식량 생산과 수렵 채집은 상호 경쟁의 대안방식인데 이를 무너뜨린 요인은 가공, 저장하는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수렵 채집이 불리해짐.

 

7장.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8장. 작물화하는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

식량 생산 시작이 늦어진 유형 : 작물화, 가축화에 적합한 자원이 적은 곳 (호주, 아메리카)

식량 생산 시작이 빠른 지역 : 서유라시아 지중해성 기후대 (비옥한 초승달 지대 등)

 

9장. 선택된 가축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가축화에 실패하는 원인 : 동물의 식성, 성장속도, 짝짓기 습성, 성격, 겁먹는 버릇, 사회적 구조

 

10장. 대륙의 축으로 돈 역사의 수레바퀴

동서축 <-> 남북축 : 위도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자 조건에 의해, 유라시아의 동서축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남북 축보다 전파가 빠름. (같은 위도 지역이 비슷한 기후, 기온, 강수량추이, 질병 분포를 가지기 때문) 위도는 기후, 성장 조건, 식량 생산 전파의 난이도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이러한 축의 방향은 식량 생산의 확산뿐 만 아니라 기술, 발명품(문자, 야금술, 기술, 제국)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침.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 축들을 중심으로 회전.

 

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식량 생산이라는 궁극적 원인이 어떻게 병원균, 문자, 기술,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 등의 직접적 원인을 낳았는지 살펴본다.

 

11장.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 병원균

질병은 인간을 죽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역사적으로 유럽인들이 정복 과정에서 질병에 관해 면역력이 훨씬 떨어지는 인디언들을 상대로 병원균을 퍼트림으로써 정복을 이루어냈다.


실례로 스페인의 잔혹한 정복자들에 의해 희생된 아메리카 원주민보다 그들이 침략 당시 들여온 수많은 세균에 의해 희생된 원주민들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세균은 소규모보다 대규모 집단에서 발병률이 더 높고 많은 병원균에 노출 되었던 유럽 사람들보다 경험이 적은 원주민들에게 더 큰 희생을 요했을 것이다.


작가는 다양한 실례를 통해 인류의 전염병들이 동물에게서 얻은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 거의 일방적인 병원균 교환의 이유를 설명한다. 만약 유럽이 다른 여러 대륙에 이 사악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면 그들을 정복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12장. 식량 생산 창시와 문자 고안과의 밀접한 연관 - 근대 제국 통치의 힘이 된 문자

문자는 근대화 된 사회에 힘을 가져다 주었다. 문자가 있으면 더 먼 곳, 더 오래된 시대에 대해 더 정확하며, 자세하고 풍부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문자를 가장 먼저 도입하여 사용한 것은 수메르인들의 음성표기법이다.

문자 체계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음소, 어표의 이용, 음절에 대하여 하나의 기호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문자의 전파는 주로 소리를 이용한 전달법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알파벳이다.


알파벳은 초기의 사용자인 수메르인들의 고대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왔는데 지금의 알파벳은 셈 알파벳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하여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이 문자 전파 과정에서 두 가지 대조적 방법이 생겨났는데 `청사진 복사'와 `아이디어의 확산'이다.

이 두가지 방법의 예로 알파벳과 우리의 한글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자를 어떤 민족은 발달시키고 또 어떤 민족은 그러지 못 했을까?

이는 초기 문자들이 가지고 있던 기능, 쓰임새, 사용자의 한계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문자들은 불완전 하거나, 모호하거나, 복잡해서 몇 사람밖에 배우지 못하였다. 이들은 문자의 쓰임새가 크고 넓다는 것을 알아채고 의도적으로 `사용 제한'을 함으로써 정치제도의 필요성에 사용하거나 극히 일부분에만 보급함으로써 그들만의 전유물로 유지하였다.

그로인해 문자는 식민지배에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문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멕시코, 중국 등지에서만 독립적으로 발생하였다.

그것은 이들 지역이 동서 각 반구에서 최초로 식량 생산을 시작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문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발명품이 전파되는데도 지리와 생태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13장.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기술 혁신과 발명은 한 사회가 아직 충족되지 못한 어떤 필요를 느낄 때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 그리고 상당시간 사용된 후에야 비로소 그 발명품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된다.

문자도 그런 필요에 의해 발명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12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고대 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술이란 어느 영웅의 개별적 행동이 아니라 누적된 행동을 통해 발전된다는 것, 그리고 기술이란 대개 어떤 필요를 미리 내다보고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고대 기술의 역사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고대인들의 시행착오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사회에 필요한 수많은 발명품을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발명품에 대한 수용도도 각각의 사회와 동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유용한 발명품이 나타나면 그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전파되는데, 하나는 그것을 수용하고 채택하는 것이고 그것을 갖지 못한 사회는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12장에서 우리는 문화의 확산이 세부적 청사진이나 아이디어로부터 확산되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 두 가지 대안은 기술 확산에도 적용된다.


이러한 확산을 통해 발명품을 가장 잘 습득할 수 있는 사회는 주요 대륙에 속해있다. 확산의 중요성과 그 확산을 가능케 하는 지리적 입지의 중요성은 기술의 전파와 파급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인류의 기술 발전의 큰 도약은 식량 생산의 채택과 정주형 생활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기술이 가장 빠르게 발달 할 수 있는 곳은, 인구가 많고 잠재적 발명가와 서로 경쟁하는 사회가 많은 지역이다.


이에 따라 유라시아 대륙은 주요축이 동서방향이므로 다른 지역으로의 전파속도가 빠르고 용이하였다.

각 대륙의 면적, 인구, 확산의 난이도, 식량생산의 출발시기 등이 기술의 발전과 전파의 가장 큰 핵심이다. 또한 이것이 지배를 하느냐, 지배를 받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하는 중요 원인이 된다.

 

14장, 평등주의부터 도둑정치까지

승리자들은 도망칠 길이 없는 패배자들을 살려두면서 식량생산에 그들을 활용하고 융합시키기 위해 정치 체제를 갖추었다.

그로인해 인간 사회의 다양성의 의도로 무리, 부족, 추장사회, 국가의 네 가지 범주의 사회형태가 발생한다.

이들 중 무리나 부족사회는 인구수가 적고 이동이 많았기 때문에 `평등주의적'형태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추장 사회와 국가는 비평 등의 복잡한 중앙 집권적 사회의 형태를 띄게 된다.


앞서 우리는 대규모, 조밀한 인구의 발생 원인에 `식량생산'이라는 조건이 충족되는 것을 살펴보았듯이 인구가 성장하면 복잡한 사회의 존재를 가능케 하고 그로인해 무력을 독점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중앙 집권적 권위체를 발전시켜 존속할 수 있게 한다.


그러한 이유로 대규모 사회는 무리의 조직만으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으므로 독점적 권력 세습 체제인 도둑정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이런 대규모 사회의 융합은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외부 세력의 위협을 받고 합병되거나 아예 정복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복하고자 하는 궁극적 원인은 `식량생산'과 `각 사회의 경쟁 및 확산'이었다.


거기서 시작된 인과관계의 사슬에 의해 병원균, 문자, 기술,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 등 정복의 직접적 요인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 모든 인과관계의 공통적 요소는 조밀한 대규모 인구와 정주형 생활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반드시 성립되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정치 체제와 이데올로기라는 두가지 요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

 

15장 대륙 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오스트레일리아는 최근까지도 지극히 단순한 기술만을 가진 인간 사회가 존재했던 곳이고 식량 생산의 토착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유일한 대륙이다.

가장 건조하고, 가장 작고 평평하며 척박한 대륙, 기후도 가장 종잡을 수 없고, 생태적으로도 가장 빈약한 곳이다.


이로 인해 가축화, 작물화 장애요인이 되었고 지리적 고립성과 적은 인구는 기술 퇴보를 가져왔다.


호주 원주민보다 발전된 뉴기니 고지대 원주민은 호주보다 상대적으로 비옥한 지역으로 독립적인 식물의 작물화가 시작되어 인구 밀도도 높았지만 저지대는 계속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뉴기니가 유럽과 비교해 여전히 원시적으로 남은 이유는 토착식량의 단백질이 적고 고지대 인구 규모를 제한한 좁은 면적으로 식량교환이 불가능했고 인구가 적고 분열된 점, 지리적 고립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주 원주민들은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그나마도 발전시키지 못했다.


유럽인들이 뉴기니를 정복하지 못한 요인은 열대성 질병, 험준한 지형, 식생활 문제 때문이며 그리하여 지금도 파푸아뉴기니는 뉴기니인과 현대의 오스트로네시아인인 인도네시아인들이 정착해있다.


유럽 이주민들의 총기, 병원균, 쇠는 유럽식 식량생산에 적합한 모든 지역에서 호주 원주민 사회를 제거했고 살아남은 사회는 유럽인들에게 쓸모없는 호주 북부, 서부지역에 있는 사회들뿐이다.

 

16장 동아시아의 운명과 중국 문화의 확산

중국은 지리적 요인- 남북 방향 거리가 짧음, 지협으로 단절되지 않음, 긴 강들(황허 강과 양쯔 강)이 운하로 연결되어 남북 방향의 교환이 쉬운 것 등- 으로 인해 일찌감치 문화적 정치적으로 통일되었다.


식량생산, 기술, 문자, 국가 형성 등에서 중국의 빠른 출발은 이웃 동남아시아,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었고 중국 문자가 지리적으로 격리된 한국과 일본에서 현재도 여전히 부분적으로 상용되는 것은 10000년전 중국에서 시작된 동식물의 가축화, 작물화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17장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유럽인들이 동아시아와 대부분의 태평양 섬들에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이미 토착적인 식량 생산자들과 병원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 본토를 출발한 오스트로네시아인(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어족)으로 인도네시아와 뉴기니 저지대까지 차지했으며 그 후손들은 폴리네시아인들이 되었다.


오스트로네시아 어족 4개 어파 중 3개 어파가 타이완에 집중되는 것과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이들의 출발점이 중국남부에서 출발, 타이완을 통해 수렵 채집 원주민들을 교체하면서 팽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뉴기니 고지대는 이미 식량생산이 진행되었고 인구밀도가 높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있어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언어도 유전자도 침투하지 못했다.

 

18장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됐던 원인

남북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비해 인류가 살게 된 출발부터 늦었고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야생 동식물이 적었으며, 확산을 방해하는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이 많았고, 인구가 조밀한 지역들이 비교적 좁았거나 고립되어 있었다.


식량생산이 지체된 것이 낙후된 궁극적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여기서 파생된 직접적인 원인인 병원균, 기술(금속, 군사기술, 동력공급원, 해상운송), 정치조직, 문자 등의 영향이 컸다.


지리적으로 고립, 분열된 상황은 대규모 언어 팽창을 어렵게 만들었고 복잡한 안데스 사회는 바퀴를 발명하지 못했으며 중앙아메리카도 바퀴를 장난감으로만 이용하다 소멸시켜버렸다.

 

19장 아프리카는 왜 흑인 천지가 됐는가?

앞서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이동은 마다가스카르까지 이어져 흑인과 열대 동남아시아인의 혼합 인종으로 나타난다.

아프리카에는 주요 다섯 인종(흑인, 백인, 피그미족, 코이산족, 인도네시아인)이 있었는데

지금은 흑인 반투족의 급속한 팽창이 피그미족과 코이산족을 침탈, 교체해 흑인들이 널리 퍼져있다.


적도 이북에서 발생한 반투족이 적도 부근의 피그미족이나 적도 이남의 코이산족을 교체할 수 있었던 것은 물려받은 환경속에 가축화, 작물화할 만한 야생 동식물이 얼마나 많으냐는 운에 달렸던 것이다.


소수의 코이산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반투족의 농경에 부적합한 남아프리카 지역에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다른 대륙보다 훨씬 일찍 출발했고 기후와 생식지도 매우 다양하고 인종도 가장 다양한 이점을 갖췄다.

그럼에도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된 직접적 이유는 총기를 비롯한 기술, 문자 보급, 정치 조직 등 탐험과 정복을 뒷받침할 이점이 없었고 궁극적인 원인은 식량생산의 발전이 늦어진 점이다.


가축화, 작물화할 만한 토종 동식물이 적었고 토착적인 식량생산에 알맞은 지역이 훨씬 좁았으며 남북 축 때문에 전파가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생각처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생물지리학적 우연 때문이었다.

 

마무리

안간 사회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4가지 환경적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 가축화.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간 차이가 식량생산 규모를 결정

2. 확산과 이동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동서방향이 유리, 생태적 지리적 장애물의 유무)의 차이

3. 각 대륙 ‘사이’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고립, 확산의 난이도 등) 때문.

4. 각 대륙의 면적 및 전체 인구 규모의 차이.

이상에서 본 역사의 가장 광범위한 경향뿐만 아니라 규모가 작고 단기간에 걸친 역사의 경향에 있어서도 환경적 요인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경우는 원래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동식물이 집중되어 다른 곳보다 몇천년 일찍 출발했지만 점차 사막화, 염분이 많은 땅으로 바뀌면서 농업에 부적합한 땅이 되어 유럽에 추월당했다.


중국이 정치적, 기술적 우위를 유럽에 뺏긴 경우는 유럽의 만성적인 분열에 비해 일찍부터 만성적인 통일국가체제를 갖춰 혁신의 중단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상황은 변하며 과거의 우위가 미래의 우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현대의 신흥강국(타이완, 한국, 말레이시아, 일본 등)들도 수천년 전부터 식량생산을 바탕으로 한 옛 중심지에 편입되어 있던 지역이거나 그 중심지로부터 이주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식량 생산을 시작한 두 중심지(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이 아직도 현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직계 후손들 국가(현대 중국)나 이웃 지역국가(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유럽), 해외 이주민이 지배하고 있는 국가(미국, 호주, 브라질)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 호주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세계를 지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진보된 기술,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그 밖의 복잡한 사회의 여타 특징들은 오직 잉여 식량 축척이 가능한 인구 밀도가 높은 정주사회에서만 나타난다.


작물화와 가축화가 가장 용이한 야생종이 집중된 지역은 식량 생산을 최초 시작한 지역이 되었고 그곳에 살던 최초의 거주자들은 총기와 병원균과 금속을 발전시킬 주도적 위치를 선점했다.

그들의 언어와 유전자가 가축, 농작물, 기술, 문자 체계와 더불어 고대에서 현대까지 세계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인류사를 얘기할 때 환경적 요인뿐만 아니라 문화적 요인, 특이한 개인의 영향력도 연구할 과제이다.

인간 역사에 대한 이러한 과학적 연구는 어떤 일들이 현대 세계를 형성했고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이지를 알려줄 것이라 전망한다.

 

<총.균.쇠> 그 후의 이야기

- 기술 확산의 영향을 보면 총기와 병원균과 금속, 그리고 좀 더 이른 기술적, 군사적 이점을 점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새 기술을 공유하게 될 때까지 폭력적인 과정을 밟아 희생시키면서 확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예:뉴질랜드 머스킷/포테이토 전쟁)

 

- 왜 유라시안인들 중에서 중국이나 다른 나라가 아닌 유럽이 팽창했는가?

직접적 요인(중국의 유교 대 유럽의 유대 그리스도의 관습, 서구 과학의 발생, 유럽의 중상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생, 영국의 석탄 보유와 결부된 산림 벌채 등)보다 궁극적 요인은 ‘최적분열의 원칙’이다. 유럽과 중국 사이의 사회적, 문화적 차이 이상으로 생태적, 지리적 차이는 궁극적인 원인이 되는데 ‘관개시설과 치수’를 이용한 중국의 농업은 주요 강 연안에서 일찍부터 중심도시가 발전하고 독립적인 나라보다는 제국이 통치할 때에 상대적 안정을 이루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장기간 광대한 지역을 정복하고 통합하는데 용이했다. 이는 현대 과학의 출연에 필요한 조건(나라간 경쟁 촉진)을 대부분 억압했다.

 

- 조직, 사업체, 국가가 생산, 창조, 혁신, 부를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혁신을 가져오는 최적의 조건은 분열이 최적에서 중간 정도에 머문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지나치게 통합되었거나 너무 분열된 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과도한 통합이나 개별화 대신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면서 서로 경쟁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세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학의 문제를 풀려면? 현재의 가난한 나라를 도우려면?

좋은 제도가 직접적인 요인인데 그것은 지리에 근거한 근본적 원인에서 출발해 제도를 형성할 직접적인 변수들끼리 긴 역사적 연결고리 속에서 발생해온 것이므로 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별 증보면>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현대 일본인의 조상을 추적하는 학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고대 일본의 조몬인이 진화했다는 주장, 한국인의 대규모 이동의 결과로 유전적, 문화적으로 형성된 야요이인의 후손이라는 주장, 한국에서의 이주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소규모였을 뿐이라는 절충적 주장이 그것이다. 이 중 저자는 규모는 명확하지 않지만 한국인의 이주가 분명 현대 일본인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쪽에 손을 든다.

그 첫 번째 근거는 유전자 분석이다. 현대 일본인의 유전자를 분석했을 때 한국인과 야요이인의 비율이 조몬인 유전자 비율보다 우세하다. 두 번째 근거는 언어다. 사실 일본어와 한국어는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는 한국인 기원설은 반박하는 증거로 더 많이 쓰인다. 그러나 저자는 현대 한국어는 신라어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일본은 신라와는 그리 긴밀한 관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 삼국시대의 한국어는 현재보다 훨씬 다양했으며, 일부 전해지는 고구려 단어는 한국어보다 오히려 일본어와 비슷하다.

결국 이러한 모든 사실에 비춰볼 때 한국과 일본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와도 같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평화는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것과 같은 유대를 재발견할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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