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체험과 사색의 기록이다
지식의 공유 본문
카리스마보다는 '지식의 공유'가 중요
비행기 사고로 사막에 떨어졌다. 어느 쪽을 바라보아도 보이는 것은 막막한 모래 뿐이다. 어느 쪽으로 움직여야 할 지 도무지 알길이 없을 때, 그래도 최초의 누군가는 말을 꺼내기 마련이다.
'이 쪽으로 가자'는 제안에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아니다 저쪽으로 가보자', 내지는 '아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자', 내지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느냐' 등.
의견이 분분하다보면, 결국 그들은 알게된다. 어느 누구도 확실한 근거는 없다는 것을. 그저, 어디로든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기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을 뿐이란 것을.
이쯤 되면 사람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한다. 누구의 말대로 하는 것이 가장 옳을 것인가. 누구의 말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그러나 판단해야만 할 때 , 생각의 초점은 '누가 믿을만 한가'로 바뀌게 된다.
이제 사람의 됨됨이와 성격이 보다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오류가 시작된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사실 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이라도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 옳을지 알 수 없다. 사람을 믿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에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이미 균열의 씨앗이 된다.
왜냐하면 누군가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던 사람들은 종종 그 믿음을 '미움'으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마 최초에 말을 꺼낸 누군가는 남다른 리더십의 소유자였을지도 모른다. 리더들은 때로, 정확한 방향이 없더라도 움직여야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그것은 조직의 와해를 막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목표의식을 통해 생존의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한 것일수도 있다.
운이 좋은 리더들은 충실한 보좌관을 얻는다. 충실한 보좌관은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들은 리더가 지시하는 방향이 옳아서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여기기에 한 사람에게 지지를 보낼 줄 안다.
그러나 운이 없는 리더들도 있다. 그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끝도 없이 던져오는 질문, 당신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을 갖느냐는 질문과 마주하다 보면, 그는 조직내에서 리더십은 커녕 최소한의 멤버십조차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그러다보니 정치가 시작이 된다. 리더는 사람을 얻어야 하고, 적어도 세를 구축할 수 있는 동의와 지지의 메카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이 방식 또한 확실한 것은 아니어서, 운이 좋으면 충실한 보좌관을 곁에 두게 되지만, 운이 나쁘면,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있는 아첨꾼을 곁에 두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인 시스템은 조직의 논리에 따르기 위해 윗사람을 지지하는 보좌관들을 양성해낸다. 이런 사람들은 리더가 되기 위해 리더를 지지한다. 안타깝게도 상황을 이해하고 기여하려는 보과�들과는 달리, 이들은 자기자신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리더를 지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같은 정치시스템을 '카리스마'라고 부른다. 무조건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능력, 이것이 진짜 리더십이라 여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면의 정치적 메카니즘을 읽어내지 못하므로 왠지 모를 낭만으로 상황을 이해해버린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결국 본질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에, 언제나 비효율적인 모순을 거듭하는 폐해로 귀결된다.
사실 진실로 좋은 리더들은 좋은 보좌관의 경험들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언제나 '기여'에 초점을 둔다. 특정한 리더에게 잘보이려는 마음보다는, 상황에 기여하려는 자세, 자신이 임한 조직에 기여하려는 자세에 중점을 둔다. 이것은 '카리스마'라는 허풍에 비해 너무도 중요한 자질이다.
그러나 의외로 이런 보좌관을 알아보지 못하는 조직도 많다.
문제는 현재의 리더가 자질이 없다는 데에 있다. 이들은 '조직이 곧 자신'이라고 믿으므로, 자신에게 복종하고, 자신에게 충직한 사람을 곁에 둔다. 원래 리더야말로 조직을 위해 최상의 기여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되는 순간 자신이 조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해버린다.
이런 리더들이 뛰어난 보좌관들을 차세대 리더로 양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절대적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들이 카리스마 시스템에 휘둘리지 않음이 불안하고, 조직을 위해 자신에게 반대할 수도 있음이 불안한 것이다. 마치 조선의 선조가 이순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의 토양이다.
좋은 토양의 조직만이 좋은 리더를 배출해 낸다.
좋은 토양이란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믿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정도는 믿을 수 있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요 과학적인 조직이다. 순진한 교과서는 결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믿는 조직일수록 위험하고 종교적이다. 사실 그들은 한 줄의 교과서도 읽지 않았다.
사막에 떨어진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믿을만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 정확한 '나침반'이다.
같이 공유해야 할 하나의 방향만이 이들을 사막에서 구할 수 있다.
오늘날 가변적인 상황에서의 나침반이 과연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가능할 것인가.
그렇게 믿는 것이 문제의 근원일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이 시대에 필요한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고, 그같은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다.
'Practical Comm > 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Louis Armstrong (0) | 2007.11.20 |
---|---|
復古熱風 그리고 'tell me' (0) | 2007.11.19 |
행복은 마음하기 나름 (0) | 2007.11.15 |
간단하게 말하라 (0) | 2007.11.15 |
歲寒松柏 (0) | 2007.11.13 |